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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상속세율 최고 60%…외국은 받는 사람 기준 완화 추세 - 중앙일보 - 중앙일보 모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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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상속세 논란 

11조원, 9200억, 3000억…. 국내 주요 그룹 총수가 냈거나 앞으로 내야 할 상속세 액수다. 11조원은 최근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갖고 있던 그룹 주식 약 18조원어치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이 감당해야 할 추정세액이다. 상속세액으로는 역대 최고치다.  
 

삼성가 11조 상속세, 지배구조 영향
선진국선 가업 승계 땐 대폭 깎아줘

재계, 공제 늘리고 세율 인하 요구
일각선 “공제 많아 실효세율 낮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최고 50%. 하지만 최대주주가 보유 주식을 상속·증여할 때는 주식 평가액을 20% 할증한 후 상속세율을 적용한다. 부(富)의 대물림을 막겠다는 취지의 경영권 프리미엄이다. 이 때문에 기업인의 주식 상속세율은 최대 60%로 치솟는다. 최근 이건희 회장 별세를 계기로 상속세 인하는 물론 폐지론까지 일고 있는 배경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삼성그룹의 상속세를 없애달라’는 청원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아무리 기업 총수라고 하지만 수천억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상속인·피상속인 모두 현금보단 주식 등을 소유한 예가 많아 주식을 내다 팔거나 담보대출 등으로 상속세를 마련하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만 해도 상속세 마련을 위해 소유한 계열사 지분 일부를 매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현재 삼성전자 0.7%, 삼성물산 17.33%, 삼성생명 0.06%, 삼성SDS 9.2%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주식을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에 넘기고, 삼성SDS의 지분을 처분하면 약 3조~4조원의 현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재계의 계산이다.  
 
이 회장의 유족은 이런 식으로 자금을 조달한 후 연부연납제를 활용해 상속세를 납부할 것으로 보인다. 연부연납제는 신청 때 전체 상속세의 ‘6분의 1’을 낸 후, 5년간 나머지를 분할납부하는 방식이다. 연이율 1.8%를 적용하고, 보유 주식 중 일부를 담보로 국세청에 제공한다. 구광모 LG 회장이 구본무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 대한 상속세 9215억원을 이런 방식으로 내고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역시 주식담보대출 등으로 상속세를 마련하고 있다.
 
대기업 총수처럼 팔 주식이 있으면 그나마 괜찮다. 자산이나 담보 물건이 별로 없는 중소기업이 문제다.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을 내놓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손톱깎이 세계 1위였던 쓰리세븐(777)이다. 2008년 창업주 김형규 회장이 별세하자 유가족은 경영권을 이어받으려 했다. 하지만 150억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마련할 길이 없어 결국 다른 기업에 상속 지분을 매각하고 경영권을 넘겨야 했다. 2003년 300억원대였던 매출은 지난해 170억원대로 주저않았다.
 
중소기업은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이용할 수 있지만, 공제 조건이 엄격해 이용률이 낮은 편이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를 받는 기업은 연 평균 80여 곳에 그친다. 비슷한 방식으로 상속공제를 허용하고 있는 독일의 연간 1만3000곳에 비해 1%도 안 된다. 독일은 기업 전체 매출의 41.5%, 고용의 57%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 제도를 통해 다양한 세제 지원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김희선 연구위원은 “상당수 중소기업이 가업승계 과정에서 세 부담으로 회사를 접거나 매각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재계가 그동안 꾸준히 상속세제 개편을 요구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일본·독일 등지에도 상속세가 있지만 우리처럼 세율이 높지 않은 데다 가업을 승계하면 되레 더 많이 공제해 준다. 영국은 상속세율이 40%지만 직계비속이 기업을 승계하면 기업 규모에 따라 50~100% 공제해 상속세가 절반으로 준다. 세금을 더 걷겠다고 상속세를 그대로 부과하면 기업이 몰락해 실업대란이 발생하고, 재정과 복지까지 무너져 나라 경제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황금 알 낳는 거위(기업)의 배를 가르진 않겠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상속세가 있는 나라는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는 추세다. 미국은 2018년 상속세 공제한도를 1인당 50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약 113억원)로 두 배로 올렸다. 앞선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상속세 폐지 내용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일본은 가업승계 특례에 고용 유지 요건을 없앴다.  
 
이 외에도 차등의결권 등 가업 승계 지원책으로 상속인의 승계를 적극 돕고 있다. 이 덕에 이들 나라엔 포드·하이네켄·BMW·발렌베리 등 100년 이상된 기업이 적지 않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이 상속 후에도 투자와 고용을 계속 늘릴 수 있도록 기업 승계 땐 상속세 부담을 줄이고 공제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 목소리도 만만찮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이 높지만 각종 공제가 많아 실효세율(실제 부담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갈수록 자산불평등이 심화하고 있어 현재의 세율을 인하해선 곤란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의당은 최근 논평을 내고 “상속세율 인하가 아니라, 오히려 공제제도를 축소해 (소득분배 등) 상속세 본연의 취지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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